순간 모든 것이 인상으로만 남고 사라지는 나의 기억에 싫증을 느낀다. 쉽게 꺼내지 못한 속내는 미적지근한 물로 샤워를 할 때야만 떠오른다. 어쩌면 기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할 의지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만은 그러지 않겠다고 샤워를 마치자마자 메모장을 연다. 집중이 필요하다. 언제쯤 긴 글을 쓸 수 있을까.
발전 없는 관계 속에서 멈춰있는 기억에 대해 떠올린다.
네번째 손가락은 참 얌전해 손톱을 깎을 때 모양도 단정하고 아프지도 않아 엄지손가락 검지손가락 중지손가락이 지내온 방향 따라 제 모양을 계속 바꿀 때에도 약지는 자신을 지키지 그러나 항상 흰 부분이 남아 손끝까지 짧게 깎아놓은 손톱들 사이에서 혼자만 항상 흰 머리띠를 쓰고 있네
버스 앞자리의 아이가 쳐다보는 끈질긴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다가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슬퍼졌다. 미안한 마음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다. 그런 날에는 온몸을 비틀고 눈을 감아봐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참다가 엄마를 찾아가 수면제를 찾아달라고 말하면, 엄마는 얌전히 누워있으면 된다고 말하며 한 번도 약을 주지 않았다.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울고 싶을만큼 잠이 오지 않을 때 쯤 잠에 들곤 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언제나 기억나지 않았다. 지난 밤의 불면이 꿈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방향이 맞지 않는 마음은 언제나 나를 슬프게 한다. 초록불이 꺼지기도 전에 내 뒤를 빠르게 지나쳐 가는 차 마저도